"평소에 쓸데없는 말들을 잘 기록하는 편이에요.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쓸데없는 말이 굉장히 아름다워서예요. 친밀한 관계일수록 쓸데없는 이야기의 비율이 높아지잖아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 가장 아름다운 말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사람이 성공을 하면 삶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시인은 성공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요...제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유지 되지 않는 정도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어떻게 생각해보면, 문학이 가진 큰 힘 중 하나가 아무리 성공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게 아닐까 싶어요. 언뜻 저주 같지만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몰라요. 삶이 달라지지 않으니 사람도 달라지지 않고. 안하무인이 될 수 없는 거죠. 물론 사람이 좋게 변하면 다행이지만 안 좋게 변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문학은 너무 다행인 게 달라지지 않아요.제 일상도 그래요. 아침에 지각할까 걱정하면서 헐레벌떡 뛰어나와야 해요. 타인들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유지하고, 틈이 날 때 시를 써야 하고요."- 박준 인터뷰 중
집에 시집이 쌓여가고, 방 식구들이 나의 소소한 취향을 알아갈 즈음에 G가 불쑥 시인 박준의 인터뷰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손에 들려있었다.
![]() |
|
한동안 주말 출근을 불사하며 바쁘게 보내온 참이었다. 그동안에 블로그는 커녕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은 산적같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일을 해야하지부터 어떻게 살아야하지까지- 문득 떠오른 큰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기도 힘겨워서 괜한 우울감에 젖었다. 몇 병의 소주와 담배 몇 개피만큼의 고민의 시간이었다.
'호우 경보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친절한 재난 경보 문자가 오전부터 몇 번 휴대폰을 울렸다. 마치 '쉬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마냥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오늘은 하루종일 빈둥거리기로 했다. 때로는 시답잖은 이유라도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시기에 읽은 박준의 산문집은 큰 위로였다. 내가 그렇게 비뚤어진 사람도 아니고, 동 떨어진 사람도 아니라는 점이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의 담담한 문체가 도닥도닥 어깨를 두드린다. 잠시 그가 이끄는대로 몸을 맡기기로 한다.
그늘남들이 하는 일은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어느 밝은 시절을스스로 등지고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소주를 좋아한다. 그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비싸게 굴지 않는 소주가 좋고, 변함 없이 곁에 두기 좋아 좋다. 나중에는 그 특유의 화학 냄새까지 좋아졌는데, 할아버지처럼 거실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소주 한 병씩 까먹는 날보며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술이 좋다. 박상의 글처럼- 술을 마시면 생각이 머리에서 안나오고 엉덩이쯤이나 발끝에서 나오는 것이 좋다. 아무렇지 않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는 점(어쩌면 '지껄이다'라는 말이 더 잘 맞겠다.)이 좋다.
문학을 하든 문학을 하지 않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 만든다. 물론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원한 삶을 사는 것이니 불평을 길게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문득 삶이 막막해지거나 아득해질 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큰 위안이 된다.
좋아하는 시인과 내 삶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벅적하게 이 사람 저 사람과 웃고 떠들며, 오만가지 일에 참견을 하다가도 문득 인간 관계가 주는 무게를 피하고 싶어 휴대폰을 끈다거나 훌쩍 떠나 모텔 방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며 혼자 지낸다거나 내가 한 부끄러운 행동이나 남을 다치게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며 잘못을 회고한다거나의 일이다.
여행과 생활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그러면 우리가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책을 보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록하자. 그들과 나눈, 쓸데없어 아름다운 말들을 기억에 남겨보자.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말을 뱉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자꾸자꾸 담으려고 노력하면 내 인생도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작은 일들은 작은 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몸의 절반은 봄 같았고 남은 절반은 겨울 같았다. 더듬거리는 말로 남자에게 이것저것을 말했고 남자는 그녀의 말을 곧잘 따랐다.
온통 사람들에게 얻어온 것들이다. 나는 매일 이 고운 연들의 품에 씻은 얼굴을 묻었던 것이다.
'Writings >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가노코 히로후미 (0) | 2017.06.11 |
---|---|
[리뷰] 1인분의 여행 - 구희선 (0) | 2017.05.27 |
[리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0) | 2017.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