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쓸데없는 말들을 잘 기록하는 편이에요.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쓸데없는 말이 굉장히 아름다워서예요. 친밀한 관계일수록 쓸데없는 이야기의 비율이 높아지잖아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 가장 아름다운 말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사람이 성공을 하면 삶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시인은 성공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요...제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유지 되지 않는 정도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문학이 가진 큰 힘 중 하나가 아무리 성공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게 아닐까 싶어요. 언뜻 저주 같지만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몰라요. 삶이 달라지지 않으니 사람도 달라지지 않고. 안하무인이 될 수 없는 거죠. 물론 사람이 좋게 변하면 다행이지만 안 좋게 변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문학은 너무 다행인 게 달라지지 않아요. 

제 일상도 그래요. 아침에 지각할까 걱정하면서 헐레벌떡 뛰어나와야 해요. 타인들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유지하고, 틈이 날 때 시를 써야 하고요." 

- 박준 인터뷰 중 


  집에 시집이 쌓여가고, 방 식구들이 나의 소소한 취향을 알아갈 즈음에 G가 불쑥 시인 박준의 인터뷰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손에 들려있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국내도서
저자 : 박준
출판 : 난다 20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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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주말 출근을 불사하며 바쁘게 보내온 참이었다. 그동안에 블로그는 커녕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은 산적같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일을 해야하지부터 어떻게 살아야하지까지- 문득 떠오른 큰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기도 힘겨워서 괜한 우울감에 젖었다. 몇 병의 소주와 담배 몇 개피만큼의 고민의 시간이었다. 

  '호우 경보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친절한 재난 경보 문자가 오전부터 몇 번 휴대폰을 울렸다. 마치 '쉬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마냥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오늘은 하루종일 빈둥거리기로 했다. 때로는 시답잖은 이유라도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시기에 읽은 박준의 산문집은 큰 위로였다. 내가 그렇게 비뚤어진 사람도 아니고, 동 떨어진 사람도 아니라는 점이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의 담담한 문체가 도닥도닥 어깨를 두드린다. 잠시 그가 이끄는대로 몸을 맡기기로 한다.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소주를 좋아한다. 그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비싸게 굴지 않는 소주가 좋고, 변함 없이 곁에 두기 좋아 좋다. 나중에는 그 특유의 화학 냄새까지 좋아졌는데, 할아버지처럼 거실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소주 한 병씩 까먹는 날보며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술이 좋다. 박상의 글처럼- 술을 마시면 생각이 머리에서 안나오고 엉덩이쯤이나 발끝에서 나오는 것이 좋다. 아무렇지 않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는 점(어쩌면 '지껄이다'라는 말이 더 잘 맞겠다.)이 좋다.

문학을 하든 문학을 하지 않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현실은 꽤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고 또 감내하게 만든다. 물론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원한 삶을 사는 것이니 불평을 길게 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문득 삶이 막막해지거나 아득해질 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큰 위안이 된다.  


  좋아하는 시인과 내 삶의 공통점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벅적하게 이 사람 저 사람과 웃고 떠들며, 오만가지 일에 참견을 하다가도 문득 인간 관계가 주는 무게를 피하고 싶어 휴대폰을 끈다거나 훌쩍 떠나 모텔 방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며 혼자 지낸다거나 내가 한 부끄러운 행동이나 남을 다치게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며 잘못을 회고한다거나의 일이다.   

여행과 생활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책을 보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록하자. 그들과 나눈, 쓸데없어 아름다운 말들을 기억에 남겨보자. 나는 그처럼 아름다운 말을 뱉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자꾸자꾸 담으려고 노력하면 내 인생도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작은 일들은 작은 일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뇌졸중 후유증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몸의 절반은 봄 같았고 남은 절반은 겨울 같았다. 더듬거리는 말로 남자에게 이것저것을 말했고 남자는 그녀의 말을 곧잘 따랐다.

온통 사람들에게 얻어온 것들이다. 나는 매일 이 고운 연들의 품에 씻은 얼굴을 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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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낑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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