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서 살다가 객사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

  여기, 치매에 걸린 노인이 하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오바. 샤워는 커녕 용변 처리도 못해 냄새가 풀풀 나지만, 강단 하나는 젊은 시절 그대로다. 작가에 따르면, 그녀는 '의연'하게 치매에 걸렸다. 그 모습에 감명 받은 시모무라와 몇 몇 간병인 동료들과 함께, 어딘가 좀 독특한 노인요양병원- 다쿠로쇼 요리아이(이하 요리아이)가 태동한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국내도서
저자 : 가노코 히로후미 / 이정환역
출판 : 푸른숲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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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아이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 집과 같은 공간. 나이를 떠나 그 누구도 병원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환자뿐만 아니라 그 곳에 일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딱딱하고 차가운 공간에서는 웃음이 나기 쉽지 않다. 

  요리아이의 모든 것은 모두가 최대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고려되었다. 작은 숲 속에 위치한 요리아이의 한 쪽은 카페 시설로 대중에 공개되어있다. 요양시설이지만 사회와 격리되어 있지 않다. 

  '교류'라는 말은 굳이 쓰지 않는단다. 혹시나 기부나 봉사와 같은 부담을 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도 자유롭게 카페에 들릴 수 있고, 미니 콘서트와 같은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분위기가 나면 그걸로 충분하다.'

  둘, 식사를 함께하는 식구들. 노인들도 따뜻한 밥과 된장국을 먹는다. 씹는 능력이 떨어졌다고 믹서에 갈아 만든 기분 나쁜 음식을 먹고 싶어할 사람은 없다. 요리아이의 원칙은, '세 끼 모두 직접 요리한 음식을 내놓는다'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얼굴이 보이고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보인다. 





  셋, 사람, 사람, 사람. 사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있지? 조금은 납득이 안갈 수도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한두줄로 요약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니 차차 풀어보자.

     '다쿠로쇼 요리아이'의 간병은 노인 한명이라도 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자세로 시작된다. 그 사람의 혼란을 함께 겪고 환자가 처한 상황에 맞추려 한다. 그냥 지켜보는게 아니라 맞추는 것이다. 이래저래 구속하거나 제재하는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강물의 속도의 맞추듯 자연스럽게 맞춘다. 자연스럽게 맞추는 이상, 이쪽 사정에 따라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된다. 흐름을 바꿔서도 안 된다. 강 하나하나에는 다 나름의 흐름이 있다. 바다에 이르는 여정은 각자 다르다.

  치매를 혼란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나와는 먼 이야기이기도 했고, 가까운 가족 중에 치매에 걸린 분들이 없었기 때문에 치매라면, '환자'나 '정신을 놓은' 사람, 어딘가에 '맡겨져야'할 사람쯤으로 생각해버리곤 했다. 요리아이는 '치매'라는 상황을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교육의 대상으로 보지도, 치료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 

     별거아닌 일처럼 들리지만 막상 실행 하려면 천 리 먼 길을 가야 하는 힘든 여정과 같다. 직원들도 필요 하고 시간도 걸린다. 일손과 끈기가 필요한, '효율과는 동떨어진 세계'의 현실이다.

  요리아이 건립 과정 중에 동네 주민들이 100% 찬성한 부분은 그래서 놀랍다. 단순히 몇 명의 패기 넘치는 간병인과 후원자들만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홉 번의 주민 설명회가 이뤄지고, 시의 보조금을 받는다. 이렇게 '효율과 동떨어진 세계'가 지역 사회의 이해와 도움을 받는다. 그 모습이 대단히 아름다웠다.

     '요리아이'의 직원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본업 이외에 다른 일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가난한 자는 한가할 틈이 없다.

  직원들에게 놀랐던 부분은 간병인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명이랄까, 아니, 그렇게 거창한 말 보다는 '생활'에 가깝다랄까. 월급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요, 대우를 받는 것도, 일이 쉬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들은 자기가 번 돈의 일부를 다시 요리아이에 기부하고, 자신이 만든 음식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돈을 내고 먹는다. 요리아이가 운영되기 위해 본업에서 벗어나 잼을 만들어 팔고, 다양한 바자회, 이벤트를 준비하고 운영한다. 그래도 즐겁단다. 

  내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냥 그들의 행복한 에너지와 바이브가 좋아서 책을 읽는 내내 나역시도 행복했다.

     주눅이 들지만 않으면 일은 조금씩 밀고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 미안해하는 마음을 고마운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럴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 다쿠로쇼 요리아이 전경, 딱 책을 읽으며 상상한 장소 그대로다.



  책은 간결한 문체만큼이나 가볍고 즐겁다. 이 사회는 문제야! 이렇게 해야해! 꼬집지도 공표하지도 않고, 우리들이 이렇게 잘하고 있어요, 자랑하지 않는다. 치매 노인들이 이렇게 불쌍하답니다, 호소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들의 이야기를 크게 다루지도 않는다. 

  그저 요리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곳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저, 가노코 씨. 이번에 지교의 '요리아이'에 오실 때... 그 왜 당신, 오토바이를 타고 오잖아요. 그때 고추 좀 내놓고 와주실 수 있어요?" "네?" "아니, 요즘 지교의 '요리아이'는 왠지 너무 진지해져서 재미가 없어요.")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인생철학이 담긴 문장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훌훌 책장을 넘기다가 꼭 멈추게 만든다. 여러 삶들이 모이고, 부딪치면서 자연스럽게 잠언이 생기기 마련인가보다.

     "세상에는 받아도 되는 돈과 받아서 안 되는 돈이 있어요." 보기드물게 냉정하고 진지한 말투였다. "그런 걸 이용해서 모으는 돈은 우리가 모은 돈이라고 말 할수 없어요. 우리 힘으로 모았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없는 돈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지어 올린다 해도 의미 없는 돈으로 지은 건물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그러고는 "그런 일을 잘못 하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게 돼요."라고 마무리 지었다.


     '객사할 각오'란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거기서 계속 살아가겠다는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다. 자신이 살 장소에 깃발을 세우고 그 밑에 털썩 주저앉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유있고 당당하게 주먹밥을 씹어 먹겠다는 오기의 표명이다. 재미 있지 않은가. 통쾌하지 않은가. 우리는 힘들게 이 세상에 태어났다.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바로 이것이 창간호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요리아이는 현재도 계속 되고 있다. 잡지도 유명해지고, 시설도 유명해져서 당분간은 돈 걱정도, 사람 걱정도 없이 운영될 예정이다. 나는 좀처럼 내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서, 주변 몇몇을 신경쓰는 것도 벅차해하는 인간이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운영하는- 살면서 늙는 곳, 다쿠로쇼 요리아리라면,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다. 

  나는 이 사회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주저함 없이 일을 만들고 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조금 큰 숙제를 얻은 기분이지만 즐겁게 받아들여 보겠다. 시모무라의 노래처럼, 케 세라 세라- 어떻게든 될거야, 앞날은 알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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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낑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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