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게 말이던 글이던 춤이던 그림이던 간에 말이다. 고전적인 말이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에선 주인공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에 많은 매력을 느꼈다. 문장을 보며 이야기를 머릿 속에 그리고, 그 이야기를 쓴 작가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한 문장 때문에 사람에 대한 기억이 통째로 바뀐 경우도 많다. 그만큼 내게 글의 힘은 강력하게 작용한다.

  나 역시도 한 때는 소설을 쓰겠답시고 끄적여보기도 했고, 시를 쓴답시고 신춘문예에 제출한 적도 있다. 고등학생 때는 무려 자서전을, A4 천 장짜리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짓거리였다. 그래도 겁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기도 했다. 허세 가득찬 글도, 누군가의 칭찬을 받은 글도, 네이버 메인에 선정된 글도 모두 내 자식이었고, 사랑스러웠다. 


@성찰의 시간이 줄어들면서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비겁한 변명이다.



  요즈음은 글쓰기가 조금은 어렵다. 듣는 귀는 고급져졌는데 내 손은 여전히 서투르기 때문이고, 제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나는 꼴을 도저히 보고만 있기 힘들어진 탓이다. 그럴수록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글 좀 잘 썼으면...!'

  하지만 수영을 책으로 배울 수 없다시피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배우기 보다는 익히는 성질을 가졌다. 그래도 글 쓰기 관련 책을 사는 이유는 있다. 우리는 적어도 수영 선수의 이야기를 보며 수영을 대하는 태도나 고충, 즐거움은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를 사면서 기대한 것 역시 '글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의 호흡을 훔쳐볼 수 있겠다는 기대 딱 하나였다. 


나는 어떻게 쓰는가
국내도서
저자 : 김영진,안수찬,유희경,손수진,듀나(이영수)(Djuna)
출판 : 씨네21북스 2013.03.21
상세보기




  영화평론, 기사, 시, 판결문, 카피, 동화, 철학서, 미술평론, 번역, 시나리오, 칼럼, 설교문, 그리고 소설까지, 나열만 해도 다채로운 장르의 다양한 스타일의 '글쟁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흥미로웠다. (물론 그 모든 글이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을 못 썼다기 보다는 그저 내 취향이 아닌 탓이 컸다.)

  대다수의 '글쟁이'들이 좋은 글의 요건으로 공통된 것을 꼽았다. 

멋 부리지 마라. 간결하게 써라. 형용사는 적게, 짧게 끊어 써라. '한 줄'을 경계하라. 미문을 쓰려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라. 입말에 가깝고 말랑말랑하게 써라. 

  쉽지만 어렵다. 그래서 분할 수 밖에 없다. 어려운 것을 쉽게 척척 해나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멋부리는 것을 좋아하고,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지만 여운을 남기는 인상적인 글을 쓰고 싶어한다. 이쯤되면 병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책은 "그러지 말지?" 하고 이야기를 던져준다. 지속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유희경 시인의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 짓겠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고, 조금은 구질구질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쩌면 좋은가. 그것마저 좋은 것을. 구질구질해도 뒤를 보면 파란 낭만이 남아있을 수 있다!

이때 내가 경계하는 것은, 흔히 시로 오해되는 '한 줄'이다. 의식적으로 적어낸 한 줄은 대개 시를 망친다. 그 한 줄을 위해 시를 써내기 때문이다. 그 '빛나는' 한 줄을 살리기 위해 빈 곳을 포장하고 채워 넣다가 결국 시는 물론 그 한 줄마저 망가뜨리고 만다. 시는 단 한 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한 줄은 의식 저 깊숙한 곳에 심어놓아야 한다. 




블로그 이미지

황낑깡

,